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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 외무성의 공식적인 입장 7714
   달과유   2005-03-17

 


다음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각국정보란에서 스크랩한 '독도문제'에 대한 내용의 번역문입니다. 굳이 지피지기... 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한번쯤 상기해두어도 나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원문은 첨부파일 참조 요망...

(제공 : 김명수 연구원, 번역 : 김제정, 서울대 강사)

다케시마(竹島) 문제

1.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

(1) 다케시마(竹島)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보아도,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히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다.

(2) 한국에 의한 다케시마의 점거는, 국제법상 어떠한 근거도 없이 행해지고 있는 불법 점거이고, 한국이 이와 같은 불법 점거에 기초하여 다케시마에 대해 행하는 어떠한 조치도 법적인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주 : 한국 측으로부터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여 영유권을 확립하기 이전에, 한국이 동도(同島)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2. 다케시마 영유권에 관한 우리나라의 주장

(1) 이하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우리나라는 늦어도 17세기 중반에는 실효적 지배에 기초하여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며, 1905년(메이지(明治) 38년) 이후에도 각의 결정에 기초하여 근대국가로서 다케시마를 영유할 의지를 재확인한 후,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여 왔다.

(가) 일본은 예로부터 다케시마(당시의 「마츠시마(松島)」)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많은 문헌·지도 등에 의해 명백하다.
(주 : 경위선(經緯線)이 투영되어 간행된 일본도(日本圖)로서 가장 대표적인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1779년)에서는 현재의 다케시마의 위치관계를 올바르게 기재하고 있다. 그 밖에도 메이지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자료가 있음.)

(나) 에도(江戶)시대 초기(1618년), 호우키번(伯耆藩)의 오오타니(大谷)·무라카와(村川) 양가(兩家)가 막부로부터 울릉도를 배령(拜領)하여 도해면허(渡海免許)를 받았고, 매년 이 섬에 건너가 어업을 행하여 전복을 막부에 헌상(獻上)하고 있었는데, 다케시마는 울릉도 도항에의 기항지(寄港地)·어로지(漁勞地)로서 이용되고 있었다. 또한 늦어도 1661년에는 양가는 막부로부터 다케시마를 배령하고 있었다.

(다) 1696년 울릉도 주변의 어업을 둘러싼 일한 간의 교섭의 결과, 막부는 울릉도에의 도항을 금하였으나(「竹島一件」), 다케시마에의 도항은 금하지 않았다.

(라) 일본은 1905년(메이지 38년) 1월의 각의 결정에 이어, 2월의 시마네현(島根縣) 고시(告示)에 의해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하여, 다케시마를 영유할 의사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 후 다케시마는 관유지(官有地) 대장(臺帳)에 게재되었고, 또한 다케시마에서의 강치 잡이는 면허제로 되어, 제2차 대전에 의해 1941년(쇼와(昭和) 16년)에 중지되기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2) 1905년의 일본 정부에 의한 다케시마 편입의 유효성

1905년(메이지 38년)의 각의 결정 및 시마네현 고시에 의한 다케시마의 시마네현에의 편입 조치는, 일본 정부가 근대국가로서 다케시마를 영유할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었고, 그 이전에 일본이 다케시마를 영유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 더구나 다른 나라가 다케시마를 영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또한 당시 신문에도 게재되어 비밀리에 행해진 것이 아닌 등 유효하게 실시된 것이다.
(주 : 영토 편입 조치를 외국 정부에 통고하는 것은 국제법상의 의무는 아니다.)

(3) 일본 점령 및 전후 처리를 위한 제 문서 가운데에서의 다케시마의 취급

대일평화조약 전의 일련의 조치(1946년 1월 29일자 연합군총사령부각서 제677호가 일본이 다케시마에 대해 정치상 또는 행정상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 및 행사하고자 기도하는 것을 잠정적으로 정지한 것 및 1946년 6월 22일자 연합군총사령부각서 제1033호가 일본 어선의 조업 구역을 규정한 맥아더라인의 설치에 있어 다케시마를 그 선의 밖에 둔 것)에 관한 문서는, 모두 그 문서 가운데 일본국 영토 귀속의 최종적 결정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기하고 있어, 다케시마를 일본의 영토로부터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원래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다케시마는 1943년의 카이로선언에 있는 「일본은 폭력 및 탐욕에 의해 약취(略取)하였던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驅逐)되어야 한다」의 「폭력 및 탐욕에 의해 약취하였던」 지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주1 :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일본이 그 독립을 승인하고 모든 권리·권원(權原) 및 청구권을 포기한 「조선」에 다케시마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미국기록공개문서 등에서 밝혀졌다.)

(주2 : 1954년(쇼와 29년) 9월 우리나라는 본건 문제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것을 제안했으나, 한국 측은 위 제안을 거부. 또 일한 양국 간에는 국교정상화 때에 「분쟁의 해결에 관한 교환 공문」을 체결.)

<참고> 다케시마의 현상(現狀)

1. 지지(地誌)

(1) 시마네현(島根縣) 오키도(隱岐島) 서북 85해리(북위 37도 9분, 동경 131도 55분)에 위치한다.

(2) 동도(東島, 女島), 서도(西島, 男島)라고 불리는 두 개의 작은 섬과 그 주변의 수십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고, 총면적은 약 0.23평방km(히비야(日比谷)공원과 거의 같은 면적).

2. 한국의 불법 점거의 상황

(1) 한국은 쇼와 29년 7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케시마에 경비대원(경찰)을 상주(쇼와 29년)시키면서 숙소, 등대, 감시소, 안테나 등을 설치, 해마다 강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2) 헤이세이(平成) 9년 11월, 우리 측으로부터의 누차에 걸친 항의에도 불구하고, 500톤급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을 완공하였다. 더욱이 헤이세이 10년 12월에는 유인등대를 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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