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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업전야> 알콜 상영회 후기 (이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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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2-07 조회수 : 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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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2017 연속기획 '혁명' : 영화와 대담

 

영화 <파업전야> 알콜 상영회 후기

 

이혜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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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업전야>1988년 동성금속의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한 노동자들의 고군분투, 이를 막으려는 회사 측의 방해와 탄압, 그리고 현실적 이유로 동료들과 함께 하지 않고 회사 편에 선 한 개인 내면적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취재하여 만들어졌다. 노동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대사 하나 하나 신경 써서 작성했다고 한다. 촬영 또한 실제 공장에서 했다. 영화를 위해 노동자들이 폐업 중인 공장을 일부러 돌려주어 촬영이 가능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파업전야>는 노동운동의 전형을 보여준 리얼리즘영화로써 상영 당시에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영화가 상영된 것은 1990. 당시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영화처럼 극적이었다.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 처분을 당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진행된 순회상영회에서는 최루탄이 터지고 전경이 투입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대학생들은 전투조를 만들어 영화 상영을 지켜냈다. 그리고 27년 후,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알콜 상영회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파업전야> 상영회가 열렸다. ‘맥주보다 막걸리가 어울리는 영화라는 소개와 함께 영화는 시작되었다.

 

 

 

인상 깊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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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부는 동성금속 단조반 노동자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쉬는 시간에 같이 족구를 하고, 일이 끝난 후 허름한 대포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 일상적 장면 안에 노동자들이 겪는 부조리한 현실들이 녹아있다. 욕설을 퍼붓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반장, 숙련공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회사, 아무런 예고 없이 진행되는 잔업과 철야, 철야 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이 공장 한 편에 누워 쪽잠을 청하는 장면들. 그들의 임금은 매우 적었다. 17일편단심, 불철주야, 초지일관동성금속에서 근무한 동업이 형님의 봉급은 겨우 275,000원이었다. 1988년 남자 단신 노동자의 최저생계비가 277,557, 2인 가족 396,699, 3인 가족 484,199, 4인 가족 671,828, 5인 가족 862,415(<<한겨레>>, 1988.11.20.)이었음을 볼 때, ‘동업이 받는 임금은 그와 가족이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영화에는 눈에 띄는 여성 노동자 2명이 있다. 한명은 동성금속 노동조합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숙희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함께 모여 공부하며 회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숙희는 동성금속 여성 노동자를 대변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여성 노동자가 받는 봉급은 겨우 14만원이며, 30-40대 여자를 퇴물이라 하고 저임금으로 혹사 시킨다는 것이었다. ‘숙희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세워야만 한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또 한명은 한수의 애인인 미자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미자는 파업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로 묘사된다. 동시에 반장으로 승진시켜준다는 제안에 구사대가 된 한수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가난은 부모가 못나서, 못 배워서가 아니라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미자’. ‘미자는 돈 때문에 구사대를 하는 한수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따르겠다며 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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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노조결성과 관련된 메인 스토리와 갈등하는 한수에 대한 서브 스토리가 같이 진행된다. ‘한수는 반장에게 맞서는 원기의 행동에 통쾌해하고, 월급날 잔업을 시키는 회사에 불만을 가지고 동료들과 함께 잔업을 거부했다. 그런 한수가 구사대 활동을 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그는 돈을 벌어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 ‘미자와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한수는 동료를 감시하고 밀고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했다. 동료들의 외면을 받는 한수에게 노조위원장 원기가 찾아온다. ‘원기는 자신이 예전에 구사대였다고 고백하며,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한수를 일깨운다. ‘한수가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깡패들에게 끌려 나가는 동료들을 구하러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고 원기와 같이 변화될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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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회 : 기억 속의 <파업전야>를 꺼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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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이후에 이은 감독과의 대담이 이어졌다. 먼저 장산곶매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 <파업전야>를 기획하고 만든 과정, 그리고 상영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다. 특히 상영 당시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강당 입구에서 학생증을 검사하고 학생들이 각목 등을 들고 상영관 앞을 지키고 있던 일, 영화를 지키기 위해 영사기 주변을 에워싸고 경찰이 들이닥칠 때를 대비하여 각각 필름과 영사기를 맡아 도망갈 계획을 세운 일 등. 당시로서는 긴박하고 두려운 일이었겠지만, 이은 감독은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상영회에 참여한 몇몇 분들이 <파업전야>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상기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1990년에 대학생이었던 분은 <파업전야> 상영을 위해 학생들이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이야기하셨다. 또 당시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분은 이번 상영회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영화가 노동현장과 노동운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긴 했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약하다라는 평가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담회는 영화 제작에 대한 일화를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파업전야>를 꺼내는 자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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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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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대담 모두 좋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파업전야> 속 젠더에 관한 것이다. 영화에서 남성들은 성적인 농담을 하며 여성들을 깔보고 무시한다. 이를 지적하는 몇몇 질문이 있었다. 이은 감독은 당시의 젠더 감수성이 지금과 같지 않았고, 시나리오를 쓸 때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며 썼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편, 여성 노동자는 하나같이 당차고 똑 부러지게 묘사되었다. 앞서 언급한 숙희미자가 그랬고, ‘미자와 함께 파업을 주도하는 여성 노동자들 역시 그러했다. 엔딩 크레딧에 영화에 도움을 주신 분들중 여성영화집단 <바리터>가 있는 것이 그 이유가 되지 않을지 질문이 이어졌지만 확실한 대답을 듣기 어려웠다. 이은 감독은 너무 오래전 일인데다가 연출이 아닌 제작을 맡았기 때문에 장면 장면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렇지만 영화 <파업전야>1980년대 말 노동자의 삶과 노동운동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점, 영화가 상영 될 당시에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볼 때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고군분투는 멋지고,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OST철의 노동자가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면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관객들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영화와 대담만큼이나 기억에 남는다. 훗날 2017년 역문연에서 열린 <파업전야> 알콜 상영회에 대한 기억을 꺼낼 때, 나는 이 모습을 이야기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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