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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30년 기꺼이 엮다 : 인권운동 역사 쓰기의 (불)가능성 (문자통역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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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4-02 조회수 :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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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 인권교육(문자통역 전문)

인권운동사랑방 30년 기꺼이 엮다 : 인권운동 역사 쓰기의 (불)가능성 


사회 : 김대현(역사문제연구소)

강연: 미류(인권운동사랑방)


 

대현: 안녕하세요?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인권교육 사회를 맡은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김대현입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은 한국 사회의 인권운동이 시작되는 초창기에 설립되어, 그간 진행된 각종 인권 이슈의 거의 모든 현장을 지켜온 단체입니다. 그래서 인권운동사랑방의 발자취를 모르고는, 인권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특히 그 많은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신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님을 모시고, 인권운동사랑방의 30년 역사를 듣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인권의 현 주소를 짚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인권을 사유하고 지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미류 님 안녕하세요?

 

미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입니다.

 

대현: 올해 30주년이라 바쁘시겠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예전부터 활동 기록을 세밀하게 잘 남겨오신 걸로 아는데요, 올해 특히 30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어디에 중점을 두고 30주년을 준비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미류: 저희가 30주년 행사를 3월에 하니까 작년부터 준비를 했어야 했어요. 30년 행사를 하려면 30년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두 가지 고민에 봉착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30년 동안 해온 일을 펼쳐서 보여준들 누가 관심 갖고 봐줄까였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20주년 때 20년의 역사를 정리해둔 게 있어서,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10년 치만 정리하면 됐어요.

 

대현: 사랑방은 기록을 잘하는 단체거든요. 사회사에 관심 있으신 분은 사랑방에 기록이 무궁무진하다는 점 참고해 주십시오. 최근에 한국인권운동의 역사를 다룬 인권의 전선(정정훈 지음, 당대, 2023)이라는 책이 출판됐는데, 읽어본 분들은 거의 사랑방의 역사네?’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하더라고요.

 

미류 : 기록이 너무 많이 있었어요. 단체들이 활동하면서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자료가 있어서 정리하면 정리할 수 있겠다 싶었죠. ‘30년 동안 인권운동을 하면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을 잘 꺼내봐야겠다. 근데 그걸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 하나가 있었고요.

또 하나의 고민은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지?’였습니다. 오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 역사문제연구소 포스터를 보고 인권운동사랑방을 처음 알게 된 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30년이나 됐지만 엄청 알려진 단체는 아니거든요.

저희보다 공식적으로 늦게 시작한 참여연대 같은 단체가 한국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거랑 비교하면, 사랑방은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단체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사랑방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보통 다른 단체들은 집중하는 특정 분야가 있고 거기에 따라 단체의 사업을 해나갑니다. 그런데 시대는 계속 변하고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인권운동사랑방은 이런 문제로 인해 생기는 빈자리들을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면서 만들어진 단체에요.

그래서 □□ 대책위,’ ‘○○ 연대로 활동을 많이 하게 되었고, 사랑방만의 사업은 별로 없는 거지요. 최근까지도 사랑방은 다른 단체한테 파견 나가는 파견단체냐고 이야기 듣기도 하거든요.

그런 특성 때문에, 사랑방이 해온 활동들이 사랑방만의 활동이 아니고 여러 단체나 활동가들이랑 같이 해왔던 게 많아요. ‘이 역사를 어떻게 설명하지?’ 이렇게 2가지의 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즐거워야 할 이런 30주년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골머리를 썼습니다.

고민 끝에 저희가 꺼내게 된 말이 기꺼이 엮다입니다. 사랑방이 해왔던 활동들을 무언가 엮었던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역사편찬위원회 할 때 ''이 엮는다는 의미인데요. 역사를 엮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운동들이나 다른 무언가를 엮어오는 활동들을 계속 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정리해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이야기를 엮고 질문을 엮고 시대를 엮어 온 단체다라고 사랑방을 설명하는 말을 만들어봤어요.

 

오늘은 3가지 카테고리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각각의 키워드를 통해서 인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부제를 인권운동 역사쓰기의 ()가능성으로 달아보았습니다. 먼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질문을 엮다키워드를 통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권은 사실 근대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태동한 담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권이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는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이런 권리들이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거든요.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하면서 어떤 권리들이 있는지 밝히고 함께 노력하자는 약속을 한 거잖아요.

그 이후에 이것을 그냥 선언이 아니라 구속력을 갖는 어떤 약속으로 만들자고 해서 사회권 규약과 자유권 규약이라고 불리는 시민권 정치에 의한 규약이 만들어지고, 각각에 의해서 자유권 위원회, 사회권 위원회 기구들이 구성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인권의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기구들이 만들어지고, 그 기구들에서는 이주노동자 가정권 등등의 구체적인 항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내 권리가 침해되면 어떡하지? 모든 국가가 약속은 했지만, 그 국가에서 침해된 권리 회복되지 않는다면, 또는 권리 실현에 제한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절차를 만들게 됩니다. 기본적인 보호 절차나 개인이 진정을 해서 구제 받을 수 있는 절차 같은 것들이요.

이런 형식들이 갖추어진 후에는 람들이 인권이라는 말을 들을 때 이 형식을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유엔에서 뭘 권고했다이런 거죠. 이런 권리들은 사실 세계인권선언이 기초로서 선언한 권리들이지만, 불변의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 세계인권선언을 만든 방법은 귀납적인 방식이었는데요. 당대 세계 각국의 정부 헌법들을 죽 모았어요. 여러 나라들이 어떤 기본적 권리들을 보장하고 있는가 검토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모든 정부가 약속해야 될 권리가 무엇인가 찾아가는 방식으로 검토했거든요.

그런데 1950년대에는, 이를테면 물에 대한 권리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었겠죠. 물은 워낙 기본적이라서 권리라는 개념을 갖다 붙여야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초국적 기업들이 공유자원이었던 물을 사유화하면서 그것을 상품화해서 파는 일들이 발생해요. 실제로 원주민들이 자유롭게 물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들이 생기면서 물에 대한 권리라는 게 국제인권기구에서 다루어지게 됩니다. 권리 개념이 이렇게 변화하는 거죠.

국제라는 레짐으로 만든 인권에 대한 형식이 그대로 작용하는 건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운동이 어떤 투쟁을 벌이는지에 따라 계속 상호작용하면서 갱신되는 것이 기도 합니다. 이걸 보통 인권의 역사성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동권투쟁을 이 사례로 많이 이야기하죠.

세계인권선언을 만들던 당시에 여러 나라 정부들이 모여서 토론을 많이 했을 거잖아요. 그때 제가 기억하기로 중국 정부가 교통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영토가 광활해서 그랬나 봐요. 교통은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에 포함된다고 해서 빠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권리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한국에서 장애인들이 투쟁하면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교통에 대한 권리가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인권과 사회운동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인권운동이라고 불리는 운동이 형성된 건 사실 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 문헌들에도 인권이라는 말이 쓰여요. 인권이 아주 낯선 단어는 아니었어요. 이미 인권은 국제적인 언어였으니까요.

1990년대 이전까지 인권은 주로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저항했던 어떤 사람들이 감옥에 가면 부당하다고 싸울 때, 이런 걸 인권의 영역이라고 여겼어요. 60, 70년대 인권단체들은 종교단체나 법률가 단체들이 그 역할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만큼 인권이 의미하는 폭이 좁았다는 거죠. 90년대의 인권운동이 이렇게 하나의 부문으로 자리 잡았다는 건, 그만큼 인권운동이라는 영역에 다채로운 영역 권리들이 들어오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창립됐던 해이기도 한 93년에 비엔나 인권대회라고 세계적인 대회가 열려요. 1993년은 사실 리우 회의라든지 여성대회 등 인권 담론을 형성해가는 국제회의들이 열리면서 그 상호작용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거든요. 비엔나 세계대회가 큰 영향을 미쳤고요. 한국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못 봤던 인권운동가들이 거기 가서 분홍색 옷 입고 투쟁 외치는 사람들 보고 깜짝 놀라서 돌아왔다는 후일담이 있었죠.

인권운동사랑방의 초기 활동도 그런 식으로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질문을 엮다라는 컨셉으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사람은 모두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지닙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럴 만한 이유'를 들며 권리에 한계를 짓습니다. 어떤 인권침해를 당연해 보이게 만듭니다. 여기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처우가 부당하다고 항의하며 사람으로 대접하라고 요구합니다. 변화는 이러한 질문과 요구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질문과 요구들을 엮습니다. 공부하고 토론하고 입장을 밝히며 권리의 언어와 담론을 만들어왔습니다.

인권으로 엮인 요구는 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선언이 됩니다. 개개인의 구제나 처우 개선을 넘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배제된 사람들이 권리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이 텍스트는 저희가 30주년 홍보를 하면서 질문을 엮다라는 키워드를 설명하는 말로 만들어본 겁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가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로 권리를 제한당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여성은 투표할 만큼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은 지금은 너무 말도 안 되지만, 과거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이야기죠. 이런 일은 긴 역사 속에 녹아있죠. “어린데 무슨 투표권을”, “고등학생이 무슨 투표를”. 이런 말들이 권리를 제한하는 말들이 되어서 인권의 영역을 제한 짓게 됩니다. 거기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함께 권리의 언어와 담론을 만드는 과정이 점차 중요한 일이 된 거지요.

이와 관련하여 사랑방에서 했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죄를 만드는 사회에서 양심수에게만 제한하지 말고 전체 수감자의 권리를 같이 이야기해보자.’ 감옥에 있다고 해서 사람대우를 못 받는 건 안 된다고 선언하면서 감옥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되고요.

그런데 사람이 감옥에만 갇히는 게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시설에 많이 갇혀있었죠. 그래서 양지마을 인권유린 진상조사라는 걸 하게 됩니다. 양지마을에서 나오신 분들과 같이 기자회견도 하고 진상조사도 했더니, 에바다 농아원 같은 여러 사회복지시설 문제로 연결되었습니다.

지금은 탈시설 권리를 법안까지 만들고 있죠? 당시에는 시설 문제를 시설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 먹여주고 재워주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가 사회보장에 실패함으로써 개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로 재설정했습니다. 이렇게 감옥과 시설에 갇힌 이들의 인권문제를 다루면서, ‘갇힌 자들의 벗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그때 있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는 못 만들었지만요.

한편 사랑방에서는 초기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에 주목했어요. 인권은 활동가들이 열심히 이야기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권교육이 중요해요. 어릴 때부터 해야 하는데요. 청소년들이 교육과 훈육의 대상이었던 현실에서, 그들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정말 많은 활동들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나온 자료집을 보면 어린이도 인간이다이런 말이 실제로 쓰여 있어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지만 그땐 그래야 하는 시기였지요. 사랑방의 인권교육 활동은 이제 인권교육실로 독립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랑방이 어린이청소년 권리에 주목했던 90년대는 노들야학이라든지 지금 있는 많은 성소수자 단체 같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권리를 주장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90년대였습니다.

권리주체에게 접근하는 것과 다른 활동으로, 사랑방에서는 국가보안법 문제도 다루었습니다. 아까 70, 80년대 반독재민주화가 인권운동의 영역이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당시 국가보안법은 그냥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법이었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으로 의제화되지는 못했어요. 1990년대 이후 이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보았습니다. 지금은 양심의 자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만 철폐 문제를 다루면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인권탄압 국가로 공격을 당하고 적대시되고 있는 고립되고 있는 국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남한, 혹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민하면서 권리 담론들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른 시기부터 자유의 영역과 관련해서 많이 이야기가 됐는데요. 점차, 감옥에 갇히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습니다. 국가가 모든 사람의 지문을 등록하고 번호를 받아야 하나? 병역거부 문제도 떠올랐죠. 징병제가 너무 당연했는데, ‘? 나는 군사훈련을 받고 싶지 않은데? 이런 나의 자유는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지?’ 묻게 된 거죠. 사랑방은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이런 질문들을 함께 던져왔습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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