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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게이 클럽에 방문한 확진자, 부재로 증명되는 시민의식(김대현,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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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6-30 조회수 : 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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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클럽에 방문한 확진자, 부재로 증명되는 시민의식

 

김대현(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

 

 

2020년 5월 2일 새벽 킹클럽에 방문했다. 2월 하순부터 꼬박 두달 반을 닫은 후 연 날이었다. 5월 7일 킹클럽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해당 시각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소식을 접했고, 이튿날 오전 관할 보건소에서 검진을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날 국민일보가 쓴 게이클럽 확진자 방문 기사는 70건 이상 받아쓰기되었고, 포털 검색어 상위권에는 게이업소의 이름이 수일간 오르내렸다. 11일에는 클럽 내 카드 사용내역을 근거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구청으로부터 자가격리를 통보받았다. 격리기간 중 종로 게이업소 중 한 곳의 확진자 방문 소식을 접했고, 방역당국은 그 주 주말 되도록 이쪽 업소의 영업을 중단해줄 것을 권고했다. 

 

자가격리가 해제된 다음날, 주말 매상으로 먹고 사는 게이업소가 들어선 종로3가를 거닐었다. 한시간쯤 걷고 나니 자가격리 중 시원찮았던 위장이 비로소 말을 듣는다. 듣던 대로 이쪽 업소는 모조리 문닫았고 나머지 업소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반한테 동네 뺏긴단 얘기에 한번도 공감해본 적 없는데 오늘 풍경을 보니 정말로 동네를 뺏긴 것 같다. 게이 한 점 묻은 곳만 가도 민폐가 될 것 같고 결과적으로 어디에도 머물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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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시민의식은 우리의 부재로 증명되어야 하나. 착하고 순종적인 시민이 되고 싶어 종태원도 끊고 번개도 끊고 살겠다는 이반시티 자게의 글이 떠오른다. 방역의 대상으로라도 비로소 호명해주어 거지같은 언론보다는 방역당국에 짐짓 감격한 마음을 품어보는 일이 생각해보면 왜 안 비참할까. 전력을 다해 희석되었으면 좋겠다는 것만이 그들에게도, 심지어 우리에게도 그토록 필요한 일이라는 게, 무해한 시민이 되기 위해 부디 존재하지 않음에 근접해달라는 역설이 따지고 보면 아프도록 황망하다.

 

행정부의 선의가 정말로 고맙기는 하다. 사람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마당에 다른 오른쪽 정권이었으면 IMF 전야에 날치기된 노동법이나 필리버스터 끝에 통과된 테방법처럼 이 정국에 도무지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 없다. 그 옛날 군사정권 시절의 부랑아나 성매매여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게이클럽에 확진자 나왔다고 게이들을 자가격리가 아니라 시설격리로 밀어붙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은 건 순전히 현 정부의 연약한 상식이 그 정도까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런 선의에 내 팔자를 기대야 한다니 삶이 너무 범속한 나머지 쓴웃음이 난다.

 

카드 사용 내역으로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 자가격리를 통보받고, 그마저도 관할보건소별로 일관된 사인이 있지 않아 격리가 아니라 자의성의 공포에 먼저 시달려야 하는 것도 실소가 터진다. 직장에 차마 커밍아웃할 수 없었을 누군가에겐 자칫 직장의 입지가 결딴날 수 있는 변수가 그들에겐 그저 행정상의 사소한 난맥일 수 있다는 게. 이 모든 웃음포인트 앞에 그저 게이끼리 안 만나는 게 지고지순의 방역대책이자 시민의식이라면 그 지엄한 명을 못이기는 척 따라주는 수밖에. 그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는 걸 습관처럼 거듭 까먹는 채로.

 

자가격리가 끝난 다음날 난 왜 종로를 거닐고 있을까. 나에게 죄가 있어 종로 사거리나 클럽 앞에 목이 매달려야 한다면 차라리 속이 시원하겠다. 자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 검은 밤같은 시국이 그저 아연할 뿐이다. 방금 잔뜩 취한 한 헤테로 커플이 서로의 목덜미를 씹어먹듯 탑골공원 앞에 비틀거리며 엉켜있다. 저런 퇴폐와 환락의 한줌 권리조차 누구에겐 서로 공평하지가 않다. 우리가 무슨 대단한 권리와 평등을 바랐나. 모처럼 텅빈 종로 거리가 일반들 떠드는 소리로 저리 왁자한데. (2020.6.2.)

 

 

* 이 글은 다음의 친구사이 소식지 기사 중 일부를 전재한 것입니다.

: 「세상 사이의 터울 #7 : 자가격리의 계보」, 『친구사이 소식지』 119, 2020.5.

https://chingusai.net/xe/newsletter/607277

 

* 이 글은 사전 협의 하에 다음의 칼럼에 수정·인용되었습니다.

: 최현숙, 「방역당국은 섹스를 금하라」, 『경향신문』 2020.5.2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52203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