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이야기들

[제기동통신]시골 사는 대학원생 ㅅ씨 - 이ㅅ영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0-04-28 조회수 : 3,835

본문

시골 사는 대학원생

 

영(2020.3.25)

 

대학원생 씨는 시골에 산다. 자가용이 없는 씨가 학교에 한 번 가려면 시내까지 한 시간, 서울까지 한 시간, 학교까지 한 시간 써서 편도 세 시간이다

씨가 시골에 사는 이유는 직장 때문인데, 관사에 살면서 출근할 때 청설모 보고 퇴근할 때 고라니를 보는 곳이다.

 

2019년 끝자락, 처음에 중국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돌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했을 때, 씨는 중국 출장이 잡혔다

다행히 씨의 출장지와 폐렴이 돌고 있는 지역의 거리는 서울-부산거리의 두 배나 되었고 

무사히 돌아와서는 출장이 조금만 늦었으면 자가격리 할 뻔했는데 아쉽다는 농담을 했다.

 

그리고 그 다다음주부터 한국 상황이 급변했다. 연일 3번 환자의 동선과 그의 '이기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우한에서 교민들을 데려와 어디에 수용할 것인지 논의할 때 씨 사는 관사 옆의 수련원이 확정된 듯이 거론되었다

수련원으로 격리처가 결정된다면 우리도 직장폐쇄 해야 하는 것이냐고 다들 농담을 했다

격리처가 진천과 아산으로 결정되자 씨는 코로나19로부터 더 멀어졌다.

 

대구에서 집단 감염이 시작되어 전국이 사이비 종교를 때려잡자고 불이 붙었던 2월 중순까지도 충청도는 코로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도리어 서울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지던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씨는 아직 개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학의 마지막을 최대한 체력 안배에 사용하기 위해서 한 주 정도 서울에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고

시골에 남아 있으려고 결정한 그 주에 천안에서도 확진자가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씨의 직장에서도 난리가 났다. 확진자가 나오기 전날 부장 회의로 잠정폐관이 결정되었고, 확진자가 나온 그 날에는 3.1절 행사가 완전히 취소되었다

같은 날 연구소 월례발표회가 있었으나 모두 마스크를 쓰고 참여했고, 각 부서에 손 소독제 1통과 부직포 마스크가 1인당 4장씩 지급됐다

직원 중 발열 등의 증상 때문에 자가격리를 시작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3월부터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를 가진 부모에 한해서 재택근무가 실시되었고, 323일에는 전 직원 교대재택근무 명령이 떨어졌다

A, B로 조를 나누어 남은 주와 그다음 주까지 2주간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조별로 접촉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 모양이니 직장에서 일이 계획대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초반에는 연구소 해외 사업들이 줄줄이 연기되더니, 이제는 국내 사업도 진행이 어렵다

국내 출장도 전부 금지되었고 자문회의도 발표회도 진행할 수가 없다

유일하게 타격이 없는 사업이 씨네 사업인 줄 알았는데 웬걸

사업팀에서 급하게 원고를 청탁하였던 여성연구자가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 개학이 미뤄져서 

양육을 도움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원고를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통화하는 동안에도 수화기 넘어로 와글거리는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씨는 들었다

갑작스럽게 온라인 강의까지 준비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너무 부담된다며 원고집필자가 기운 없이 말했다.

 

온라인 강의, 통화를 하던 시점까지도 씨는 온라인 강의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무슨 얘기냐면 대학이 기본적으로 학부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1차로 개강을 2주 연기하고

다시 2주간은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라는 공문을 내리기 시작했을 때 그럼 대학원 수업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가 불명확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는 대학원에서 온라인 수업이 가능은 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전적으로 교수의 재량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지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시골에 사는 씨는 학교 홈페이지의 공지사항 외에는 학교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씨네 학교는 그 공지사항마저도 다른 학교들보다 일주일씩은 늦곤 했다

학교 당국은 3월 말까지 학교 건물을 전부 폐쇄한다는데 씨가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수업은 18, 19일에 개강을 명시해두었다.

 

씨는 어쩔 수 없이 18일에 오전 근무를 마치고 편도 3시간을 들여서 학교에 갔다.

 학교 건물이 폐쇄되어 학교 앞 모 세미나실을 빌려서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19일 오전 수업은 18일 오후에 온라인 강의로 진행한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씨는 다음날 올라온 강의 안을 핸드폰으로 보면서 3시간 걸려서 직장에 출근했다.

 

학교에서는 44일까지 온라인 강의를 연장한다고 밝혔지만, 씨가 듣는 수업은 모두 4월 첫 주에는 모여서 발표를 하게 될 예정이다

개강을 했다고는 하지만, 한 달 내내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학기 500만원 되는 등록금을 내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학교는 대학원생을 위한 적절한 온라인 강의 가이드라인 조차 제공을 해주지 않는다.

 

씨는 코로나가 무서운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