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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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8-21 조회수 : 32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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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식민지 조선 사회 (2)>
전영욱 | 전시체제기 ‘식민지’ 조선의 위상과 법의 위치 - 제령(制令)의 자기부정이라는 결말
장 신 | 1941년 「조선임시보안령」의 제정과 운용
◆ 집담회
새로운 한국현대사 스토리텔링의 등장과 ‘난민’
저작: 김아람, 『난민, 경계의삶-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역사비평사, 2023)
사회: 김헌주
토론: 김일환, 정대훈, 한봉석
◆ 연구논문
강성호 | 식민지시기 순천 연자루의 로컬리티와 근대적 변용 양상의 추이
소현숙 | 한국 근대 여성사/젠더사 연구 동향과 과제
박정민 | 물을 둘러싼 “도시 대 농촌의 항쟁” : 1930년대 포항 상수도 수원지의 이전을 둘러싼 포항읍-흥해면 지역사회의 대립
이명학 | 1928~37년 조선총독부 공영주택정책의 전개 과정과 특징
◆ 서평
김이경 | 농촌 운동·살림·돌봄의 주체, 여성농민운동가들의 눈부신 생애와 투쟁
: 강희진 외, 『미치도록 눈부시던-1세대 여성농민운동가 구술기』 (도서출판 말, 2023)
<책머리에>
2023년 여름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다. 한국 역사에서 어느 해가 그렇지 않았겠는가만은, 올해는 유독 ‘징치(懲治)’가 기승을 부린다. 원래 사람이 다치면 먼저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인지상정은 실종되었다. 사회가 온통 그 시간을 잘못한 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오늘의 슬픔은 결코 내일의 교훈이 되지 못한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판결만 내리는 사회라니.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사회보다 더 품격이 떨어지는 공동체가 아닌가?
이번호 역사문제연구는 그런 면에서 유독 시대상과 조응하는 여러 글들을 수록해 보았다. 식민지 전시체제기의 ‘법’을 다룬 특집 2편, 새로운 한국사의 상상력을 제공하는 집담회, 그리고 식민지 근대를 다양한 문법으로 읽어내리고자 하는 일반논문들, 마지막으로 여성사/젠더사 연구의 현단계 정리, 그리고 여성농민을 다룬 서평을 수록해보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 구성은 독자들에게 잠시 배심원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가로이 사색을, 역사학의 상상력을, 그리고 인문학의 너른 품을 보시라고 마련한 자리라고 할 만하다.
먼저 이번 호 특집 2편은 시대상과 어우러져 아이러니함이 없지 않다. 전영욱과 장신은 지난호 전시체제기 특집의 후속 필진들이다. 특집을 이끌었던 백선례 선생의 소개가 있겠지만, 간략하게 이들의 논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영욱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조선적 법치’를 주장했던 조선총독부가 전시체제기에 접어들어, 내지 일본의 법률을 추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외피상 조선적 법치이지만, 결국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이 현상이 어떻게 ‘법’이라는 이름하에 성립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조선 총독의 끝없는 제령 공포는 결국 법치의 모순을 불러왔다고 이야기한다. 다음으로 장신은 1941년 12월 26일 공포된 조선임시보안령을 꼼꼼히 분석하였다. 그는 일본의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임시취체법’의 조선판인 이 법의 변형에 주목했다. 그는 이 법이 집회결사, 언론출판, 유언비어 단속으로 이루어지지만, 앞의 두 항목은 큰 변화를 야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 법안을 만들 때 식민지 경찰의 집회, 결사 부분에 대한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점, 정작 유언비어 단속이라는 항목을 통해 식민지의 대부분의 발화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두 저자는 공히 ‘법’의 이름으로 어떻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체계화될 수 있었는지, 그 악법의 잔여가 혹여 한국현대로 이어지지 않았을지에 대한 논증과 가설을 흥미롭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번 호에서는 역사학 단행본의 씨가 마른 현실에서 간만에 나온 현대사 책에 대한 저작비평회를 진행했다. 한림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김아람 선생의 저작, 『난민, 경계의 삶-1945~60년대 농촌 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라는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국제적으로 익숙한 ‘난민’이라는 키워드를 도전적으로 활용해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한국현대사를 소수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서술하고자 하였다. 그동안 사회과학 등에서 주로 다루어지던 난민, 구호 등의 영역을 역사학이 적극적으로 수렴하였다는 점, 그리고 저자가 오랫동안 공들인 현장 구술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점, 무엇보다 난민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1950~60년대에 대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토론자로 사회학계 및 역사학계의 두 신성들, 김일환, 정대훈 두 선생님들을 모시고 두 분야의 질문들을 교차로 진행하였다. 청중까지 포함해 한국현대사의 새로운 서술의 등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으니, 독자가 읽기에도 흥미로울 것으로 생각된다.
김아람 선생의 책이 한국현대사를 다시 읽는 시도였다면, 이번 호 일반논문들은 대체로 식민지 시기를 다시 읽어보고자 하는 시도들로 가득했다. 강성호, 박정민, 이명학이 그 주인공들이다. 강성호의 글은 식민지 근대성 을 탐구하는 연구들이 다시금 여러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 례이다. 그는 전남 순천부 읍성 문루였던 연자루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공간과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전유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그는 전통 공간이었던 연자루가 식민지 시기 읍성 문루라는 근대적 변용을 겪는 한편, 이후 만세 시위의 장소로, 다시 순천 청년회가 활용한 계몽이자, 공론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근대를 향해 달려오기만 한 퇴적된 유적이 아닌, 공간에 반영된 중층적 역사성을 지닌 유적을 통해 지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식민지 연구에 대한 새로운 관점, 그리고 지역사적 맥락에서 공간을 재해석해보고자 하는 시도 모두가 느껴지는 글이라고 할 것이다.
박정민의 글은 산업화 시기 ‘발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측과 혜택을 받은 측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식민지 시기 도시와 농촌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1930년대 발전의 징표로 지역 및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포항읍의 상수도관 설치사의 이면을 역사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포항읍 발전에 대한 욕망 이면에 방대한 곡창지대에 대한 용수공급 상실을 강요받았던 흥해면의 사정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댓가와 혜택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이러한 모습은 마치 1960~70년대 산업화를 통해 불균등하게 발전했던 한국의 도시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명학의 글은 주택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큰 글이다. 그는 1920~30년대 조선총독부의 공영주택정책을 분석하였는데, 그 정책이 실제로는 대다수 조선인의 삶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조선총독부의 자료와 전국적 양상을 참고한 후, 일반적인 사학과 논문에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수치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다. 즉 조선총독부가 새로운 통치 기술인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주택 정책을 폈으나, 그 이익은 조선인과는 무관하였으며, 오히려 일부 일본인 관공리에게만 그 이득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의 논문은 결국 통치 기술로서 주택정책이 대다수에 대한 차별로 귀결된 한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 현재의 주택 정책을 다시금 돌이켜 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호에는 여성사/젠더사 분야에 소중한 두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소현숙의 글은 2000년대 이후 근대 여성사/젠더사 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성교육, 인물 및 운동, 신여성, 여성노동, 근대 가족, 이주 및 경계, 그리고 전시 여성동원과 젠더정치라는 구분을 통해 근대 여성사/젠더사에 대한 개략을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의 말미에는 최근 역사학의 인접 영역들에서 제시되고 있는 감정사, 개념사, 트랜스 히스토리 등과의 교차점에 대한 성찰도 담고 있다. 기존 연구에 대한 언급, 그리고 젠더사의 정의 등을 포괄하고 있어서, 이분야의 최근 연구에 관심을 지닌 연구자들에게 있어 유용한 글일 것이다.
또 하나의 소중한 글은 서평이다. 협동조합사의 전문가인 신진 김이경이 작성하였다. 제1세대 여성농민운동가 9인에 대한 집단전기, 구술기인 『제1세대 여성농민운동가 구술기-미치도록 눈부시던』이 그 대상이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물론, 1970~80년대 한국 지역 농민운동의 역사적 맥락을 잘 드러냄으로써, 이 책이 역사적으로 지닌 위상을 잘 소개해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역사학자 정현백의 추천도 받은 바 있다. 여성운동은 물론 농민운동의 공백에 대한 두 전문가의 추천을 받은 책이다. 서평은 물론 책에 대한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사건은 많지만, 다양한 의견과 시선이 교환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온통 판관만 가득하고, 대화는 실종되었다. 보다 많은 시선을 교차하고자 하는 역사학의 노력이, 그 방법이 이 책을 통해 전달되었으면 한다.
2023년 7월
한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