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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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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4-25 조회수 :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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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장애인의 이동권 요구 시위를 폄훼하고, 대선 결과에 실망한 광주 시민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혐오 정치가 젊은 정치인의 무기가 되는 현실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다수의 편익, 공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차별과 폭력을 포장하고, 지지를 결집하려는 행위는 소수자와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공존하는 타자의 삶을 무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47호의 집담회 지금 한국에서 역사를 말하고, 읽고, 쓴다는 것 역사 왜곡을 둘러싼 쟁점에 비추어에서도 실상 역사적 피해에 대한 혐오 문제를 다루었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20211월에 개 정하여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도록 하였고, 12월에 처음 적용, 사건이 검찰 송치되었다. 역사적 사실의 왜곡·날조가 피해자를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기 때문에 법률로 제재한다는 취지에서 특별법이 개정된 것이다.

집담회에는 역사·법학 연구자, 역사 교사, 역사 미디어 제작자 등 각계에서 역사를 매개로 활동하는 분들을 모셔서 법적 처벌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사실의 왜곡이나 피해자 혐오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써 법이 가진 부정적 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위법자가 역으로 소수자성을 내세운다거나 유력 정치인의 비아냥과 혐오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상기할 만하다.

혐오의 상처를 안은 채 맞는 한국의 4월은 어느 때보다 잔인하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시 황무지’(1922)에서 4월은 죽은 땅에서 추억과 욕망을 섞어 꽃을 피우는 잔인한 달이었고, 밴드 딥퍼플(Deep Purple)의 곡 ‘April’(1969)에서는 온 마을이 고통으로 가득 차는 어둠의 계절이다. 다가오는 420일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에 터져 나올 장애인의 분노와 슬픔이, 꽃이 되어 피어나서 외면되지 않기를 바란다. 164·16세월호 참사의 8주기가 국민 안전의 날이라는 허울에 갇히지 않고 마을의, 공동체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면 좋겠다.

역사문제연구는 역사·역사 서술 속의 소외와 아픔, 새로운 문제 제기와 연구 방법을 담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이번 특집과 기획은 북한의 교육과 한국전쟁의 영상으로 꾸려졌는데, 북한사 연구 특집은 꽤 오랜만이다.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도 북한사 연구를 이어가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또 전쟁의 참화, 냉전의 표상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연구로 환원하는 작업 또한 결코 수월하지 않은데, 오랜 기간 지난한 작업을 하고 있는 팀에도 경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독자들에게도 논문들이 한국의 현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집 북한의 교육 시스템과 국가 건설에는 박창희, 이세영, 문미라의 논문 세 편이 실려있지만 사실 노경덕의 특집 소개글까지 네 편인 셈이다. 이제까지 역사문제연구에서 특집이나 기획의 소개는 공동연구의 배경, 과정, 논문 내용 요약으로 간략히 쓰였고, 온라인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많은 독자들이 특집·기획의 취지를 접하기가 어려웠다. 학술지를 종이 책자로 보지 않는 요즘 경향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만, 이번 특집을 설명하는 노경덕의 글은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노경덕은 2차 세계대전, 68혁명, 소련 붕괴의 세계사적 맥락에서 소련과 제2세계 국가의 교육 연구가 어떠한 시각과 양상으로 진행되었는지 정리하였다. 전체 주의론의 강세와 쇠퇴, 수정주의에서 강조한 사회와 주체의 자율적 영역, 푸코주의자가 주장한 계몽주의의 영향, 신전통주의자가 발견한 민중의 심성과 전통 관행의 흐름은 교육 분야에 국한하지 않은 공산주의 체제의 사회상을 비춘다는 점에서도 중요하겠다. 북한 교육 또한 그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데, 2세계 연구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도 노경덕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창희는 1946~47년에 북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가 주도하여 당원교육을 실시하였음을 밝히고, 그 내용에서는 북한의 혁명적 경험을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결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련계와는 갈등했다고 분석하였다. 노동자 교육의 측면에서 이세영은 직장 내의 문화시설과 써클 활동을 다루었다. 일제시기와 비교할 때 노동자들의 문화생활 향유 기회가 늘고 성장의 가능성도 있었으나 정권의 문화정책의 한계 또한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문미라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교육을 중단하지 않기 위해 했던 시설 복구와 교원 재교육, 기술자 양성의 실제를 보여주었고, 전쟁 피해자인 유자녀와 영예군인의 특수 교육기관의 사례도 포함하고 있다. 각 주제는 교육을 통해 북한의 체제 성립과 전후 복구의 특징을 규명하였는데, 남한과의 비교 분석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전쟁 영상과 사상심리전기획은, 한국전쟁 연구의 폭을 확장하면서 동시에 역사 연구에서 영상과 같은 새 형식의 자료와 그 의미를 어떻게 분석할지 질문을 던진다. 분석 대상이 된 영상은 미군이 전쟁 당시에 촬영하거나 이후에 미공보원 등에서 가공·제작한 것이어서 그 군사적 목적과 시각은 뚜렷하다. 강성현은 기획 소개글에서 이러한 한국전쟁 영상물이 대량설득무기의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강성현의 논문은 국내 여러 기관의 영상 수집 및 연구 현황, 미군이 제작한 푸티지(footage, 미편집) 영상의 유형과 관점, 촬영 기법을 정리하여 영상 연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영상물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연구 해제의 필요성과 예시도 제시하며 영상 연구 방법론을 구체화하였다. 전갑생은 미8군 인디언헤드 부대가 북한 영상을 노획·분류·보관한 과정을 보여주고, 이 영상이 포로재교육에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분석하였다. 다큐멘터리, TV시리즈에서 드러나는 심리전의 기획과 실행은 예상보다도 치밀했음을 알 수 있다. 김일환은 미 육군 통신부대가 남긴 영상에서 포로들의 다양한 모습을 포착하였다. 이송 과정에서 밝은 표정을 보이는 포로, 주눅이 든 여성 포로의 모습, 남북한 송환포로의 복합적 감정과 반공포로 환영 행사에 동원된 시민들의 표정을 읽어내고자 한 저자의 의지가 돋보인다.

연구논문은 구체적인 주제를 새로운 자료로 분석한 세 편을 담을 수 있었다. 북한군()의 역사를 꼼꼼히 천착하고 있는 김선호는 북한 해군 창설을 다루었다. 해군은 육군·공군과 달리 소련 출신의 고려인들로 구성되었으며 소련군의 군사교리를 도입했지만, 해상전투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공격보다는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새로운 분석이 나왔다. 김진흠은 서울신문보도에 등장하는 이승만의 이미지와 변화상을 보여주었다. 정부 기관지가 1954년 사사오입 개헌 후 친근하고 소박하며 건강한 이미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국부와 독재자의 이분법을 넘은 감정의 정치와 언론 기능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박진영은 2007년에 공개된 진보당 사건기록을 통해 진보당 사건의 빌미가 된 김기철의 선언문이 평화통일론을 진전시켰다고 밝히며 조봉암의 평화통일에의 길이 진보당과 이승만 정권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분석하였다. 자유당·민주당과 함께 평화통일을 구상했던 진보당의 시도는, 여전히 엄혹한 분단 현실에서 진지하게 되돌아볼 만하다.

이번 호는 공교롭게도 특집, 기획, 연구논문이 모두 현대사에 집중되어 있다. 서평이 유일하게 47호의 근대사 연구를 담당하고 있어서 더욱 귀하다. 서평은 최규진의 이 약 한번 잡숴봐식민지 약 광고와 신체정치(서해문집, 2021)이다. 광고를 통해 식민지 시기의 사회·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평자가 미완성이라고 한 이유는 저자가 수집하고 정리한 자료가 매우 방대하고, 책은 그 일부의 성과물이라는 데 있다. 서평에 책의 매력과 그 의미도 충분히 담겨 있으니 즐거운 일독이 되리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로 아픔을 겪었고, 겪고 있고, 겪을 예정인 것 같다. 동시에 일상은 이전으로 점차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호 교육과 영상 특집·기획에 비추어보면 지난 2년 동안 여러 곳에서 교육이 대화와 스킨십 없는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다행히 우리 대학(한림대)에서는 20202학기부터 대면/비대면 병행 수업을 해왔고 지금도 동아리, 면담, 답사 등 학생들의 활동 대부분을 직접 만나서 진행하길 권한다. 대학이 동영상 강의로 학점을 메우는 곳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공간 제약 없는 영상 수업에 익숙해진 교원들과 방역 책임이 두려운 대학이, 마음을 나눌 친구를 사귀고 교수와 직접 대화하며 활발하게 토론하는 수업을 원하는 20대의 요구를 모른 척하는 것은 코로나가 끝나도 계속될지 모른다. 영상의 편의를 앞세우며 중단했던 대학의 교육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지 고민이 절실하다.

20223

김아람

 

역사문제연구 47| 2022. 03

 

 

특집: 북한의 교육 시스템과 국가 건설

노경덕 | 공산주의 체제의 교육: 연구사적 맥락 

박창희 | 해방 이후 북조선로동당의 당원교육 연구 : 19468~19483월을 중심으로

이세영 | 북한의 직장 문화시설 설치와 노동자의 문화 향유(1945~1950)

문미라 | 한국전쟁기 북한의 전시교육과정 운영과 기술인력 양성

 

기획: 한국전쟁 영상과 사상심리전

강성현 | 한국전쟁 푸티지영상,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전갑생 | 미군의 북한 영상 노획과 심리전 영화 제작

김일환 | 미군 푸티지 영상으로 본 한국전쟁 포로교환과 그 이면

 

연구논문

김선호 | 북한 해군의 창설과 조직·간부구성

김진흠 | 1950년대 중후반기 이승만 대통령의 언론 이미지 변화 : 정부기관지 서울신문의 보도를 중심으로

박진영 | ‘진보당사건과 진보당의 평화통일론 재검토 : 『진보당사건기록』을 중심으로

 

서평

정일영 | 미완성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매력적인 연구서이자 대중서, 자료집 : 최규진, 『이 약 한번 잡숴봐! - 식민지 약 광고와 신체정치』 (서해문집, 2021)

 

집담회

지금 한국에서 역사를 말하고, 읽고, 쓴다는 것 : 역사 왜곡을 둘러싼 쟁점에 비추어

사회: 전영욱

패널: 김재원, 김태윤, 이동욱,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