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이야기들
공지

『역사문제연구』 46호

페이지 정보

작성일2021-12-23 조회수 : 470

본문

39417ca257046afdb0c8fdbf8c3ab6b1_1640229368_9561.jpg

 

 


<책머리에>

 

11월 둘째 주에 수업으로 광주 답사를 다녀왔다. 춘천과 광주의 대학() 생들이 서로 만나고 5.18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진솔하고 소중했다. 왜곡과 부정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광주 사람만 그런 건 아닐까생각하게 된다는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생의 말은 누가, , 다시 광주를 고립시키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답사에 동행한 80년대 학번 선생님에게 5.18 은 대학에서 전공뿐만 아니라 세계관을 바꾸는 계기였고, 80년대생인 나에게는 내란죄를 짓고도 풀려날 수 있다는 것에 의아해했던 사건이었다. 2000년대생인 학생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될까 물으려 할 때 전두환이 죽었다. 어떤 잘못과 사실도 밝히지 않고 제 수명을 다해 버렸다. 그 자로 인 한 통한(痛恨)과 허망함이 학생들에게 느껴질 수 있을까. 20대에게 역사 속 의 고통과 억울함, 폭력과 차별이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보다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혐오와 차별이 제도와 법률의 틀 속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일이라 생각하고 만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처음 발의되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정하지 못했다. 10만 명의 국민동의 청원에 대해 법안 심사기한을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인 20245월로 미룬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이 표현 의 자유를 침해한다거나 다수에게 역차별이 된다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경험했고, 배웠던 많은 이야기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팍팍한 일상 속에 미래의 불안까지 짊어진 20대에게 굴절되어 온 한국의 역사 속에 무시되어 온 소수자()를 환기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차근차근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분단이라는 또 다른 한국의 현실도 자꾸 무감각해지는 듯하지만, 역사는 그 소통의 창구가 된다. 이번 역사문제연구46호의 특집 주제는 탈냉전 중립과 비동맹의 역사들이다. 196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처음 열렸던 비동맹회의의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의 성과물이다. 장문석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 김삼규의 중립화통일론, 일본 소설 광장의 고독을 번역한 신동문 을 통해 1960년 한국과 일본에 겹치는 중립의 상상력을 다루었다. 류기현은 1960년대 비동맹·중립 국가들이 성장하며 서방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왔던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결국 해체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였다. 김태경은 1950~70년대에 북한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인식이 친선과 적대를 반복해 온 과정을 살피며 평화공존론 의 다양성보다는 자주성과 통일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비동맹 외교를 활용해 왔다고 보았다. 김도민의 특집 설명글처럼 평화를 추구했던 중립·비동맹의 시도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적대와 배제의 역사를 지나온 우리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이번 호는 역사 속에서 한국의 안과 밖, 그 만남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여럿 있었다. 50여 명의 참석으로 열띠게 진행된 저작비평회도 그랬다. 홍정완의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이데올로기와 근대화론의 이론체계는 한국 전쟁 후 1960년대 전반까지의 정치학과 경제학을 중심으로 학술 체계와 지적 논리를 사상사적 맥락에서 다루었다. 미국의 근대화론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해당 분야의 거의 모든 저술을 저인망식으로 훑고 있기 때문에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저작비평회 토론을 먼저 읽고 책을 읽는 것도 이해를 높일 수 있겠다. 토론자 김인수, 옥창준, 이봉규는 각각 사회학, 외교학, 역사학을 전공자로 흥미로운 쟁점들이 다수 제기되었다. 사회과학 지식의 생산과 그 지형을 왜, 어떻게 밝힐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사회과학과 역사학이 처한 현재 관심사와 방법론의 차이도 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서평 저서는 케네디 정권 시기의 미국 사회과학과 근대화론을 다룬 마이클 레이섬의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이다. 한봉석은 저자가 종전의 냉전사 연구와 달리 근대화론을 이데올로기로 다루며 현실에서 미국의 많은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하였다. 미국의 한국 원조사업을 연구하는 평자가 한국의 경우와 비교하는 지점은 특히 유익하다. 저작비평회와 서평의 저작을 통해 1960년대의 주요 화두인 근대화를 한국과 미국의 사상과 현실 속에서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논문은 시기와 분야가 고르게 분포되었다. 왕신은 한말의 법학 교과서 세 권을 분석하며 여러 주권 사상이 국내외 지식인들의 글과 유사하면 서도 개념의 주안점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주권 개념의 소개로 주권 의식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후지타 타다요시는 일제하~미군정기의 여자상업학교를 다루었다. 1920년대부터 설립된 여상이 시기별로 요구받은 역할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고, 해방 후 학교 재개를 위한 미군정의 인식과 학교 현장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신창훈은 1950~60년대 민주당 신파(新派)가 형성, 결집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자금과 네트워크가 제한적이었던 야당에서 파벌이 부상하고 이를 통해 내부의 자원을 활용하는 모습은 이후에도 답습하는 보수 야당의 양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조은경은 1960년대 초반에 중국 광저우에 조성 한 한국 독립운동 기념물인 중조혈의정을 분석하였다. 이것은 중소분쟁 중에 북중 우호의 산물이었는데, 건립 장소, 과정, 이후 인식을 중국의 자료들을 통해 사진과 지도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소현숙의 논문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가족사에 관한 연구 동향을 알차게 정리하여 관련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가족 변화의 실태, ‘정상 가족규범 의 존재 양상, 가족과 정치의 관계 연구를 향후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2022년 대선의 시계로 흐르고 있다. 2022년의 대선에서도 가족이 중요한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상 가족이데올로기는 대중적으로도 매우 강력하게 작동하며 정치인의 생명을 좌우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가족을 매개로 하여 또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정치를 활용하고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새 정부의 출범은 다양한 형태와 구성의 가족을 존중하는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역사문제연구46호는 정부보다 먼저 새로운 출발을 한다.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 구성원들이 1996년에 창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많은 연구자들과 독자 여러분의 관심으로 15년 만에 연 2회 발간을 연 3(3, 7, 11월 말일)로 확대하였다. 학술지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원고 모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이 시기에 간기를 확대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간행 출판사도 도서출판선인으로 변경하였다. 반기지 않는다는 학술지 편집을 흔쾌히 맡아주신 윤관백 대표님과 편집 담당 박애리 실장님께 감사하다. 편집위원회는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알찬 기획으로 우리 사회와 학계 에 필요한 화두를 나누고자 의지를 다졌다. 어느 해외 학술지는 연구자들이 심사하는 것 자체도 영예롭게 여겨서 심사를 무상으로 한다고 들었다. 필자, 토론자, 심사자 모두가 역사문제연구를 명예롭게 생각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발걸음이 이미 시작되었기를 바라며.

202111

김아람

 

 

역사문제연구 46| 2021. 11

 

특집 : 탈냉전 중립과 비동맹의 역사들

장문석 | 현해탄을 오간 중립최인훈의 광장과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

류기현 | 1960년대 비동맹·중립주의 확산과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의 균열

김태경 | 비동맹운동 60주년에 돌아보는 냉전기 북한의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인식 변화

 

저작비평회 : 사상사의 흐름에서 보는 한국 사회와 근대화론의 만남

저작: 홍정완,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체계(역사비평사, 2021)

사회: 정무용

토론: 김인수, 옥창준, 이봉규

 

연구논문

왕 신 | 한말 법학 교과서에 나타난 주권 개념 연구 : 헌법(憲法), 법학통론(法學通論), 평시 국제공법(平時 國際公法)을 중심으로

후지타 타다요시 | 학교의 '해방': 미군정기 여자상업학교의 재개와 학교 공간

신창훈 | 1, 2공화국기 민주당 신파의 형성과 이완

조은경 | 중국 廣州지역 내 한국 독립운동 관련 기념물 조성과 인식 변화 : 廣州起義烈士陵園 中朝血誼亭을 중심으로

소현숙 | 가족 근대화의 모델 찾기에서 가족 정상성에 대한 성찰로 : 한국 현대 가족사 연구 동향과 과제

 

서평

한봉석 |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의 근대화론이 성공한 나라라는 평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한 단서 : 마이클 레이섬, 권혁은·김도민·류기현·신재준·정무용·최혜린 옮김,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그린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