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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45호 (2021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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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5-31 조회수 : 3,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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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어느 특강에서 중고등학생들과 한국사 수업을 시작하며 학교에서 원하는 과목만 배울 수 있다면 역사를 고를지 물었다. 20명 중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렵고 지루하며 외울 게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청소년들에게 역사 과목은 억지로 배우는 것이며 흥미가 없다. 고교학점제 시행과 교육과정 개정을 앞둔 지금, 학생들의 이 목소리는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교육은 미래의 사회를 만들고 학문 세대를 양성하는 것인데, 역사 연구자들은 어떤 대안을 생각하고 있을까.

 

또 대학 밖 민주주의 학교특강에서는 청년들과 민주화와 과거사 정리에 관한 토론을 이어갔다. 한 청년이 518유공자나 그 자녀가 교원임용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이 불만이라는 친구에게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토로하였다. 젊은 세대는 역사가 무엇이며 왜 배워야 하는지 묻고 있으며 지금의 현실적 이해관계와 역사로부터 확립한 정의는 이들의 사고 속에서 대립하고 있다.

 

역사문제연구는 한국근현대사 분야에서 연구를 심화하고, 학술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미래 세대의 부정적인 인식과도 소통하고 여러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아울러 줄글로 쓰고 있는 이 이야기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디지털 기기와 살아온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글읽기는 어렵고, 역사의 개념과 서술은 더욱 난해할 수밖에 없다. 왜곡된 역사 정보는 노년뿐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가까이 있다. 앞으로의 학술 연구와 공유의 방식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변화를 모색할 필요도 있겠다.

 

이번 45호의 특집은 ‘518 폭력의 기원과 통치를 주제로 518광주항쟁 40주년을 기억하기 위해 열렸던 2020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심포지엄이 그 토대가 되었다. 518희생자가 유공자가 되었어도 헬기 사격 및 발포 명령자, 오인 사격, 행방불명과 시신 암매장 등 항쟁 당시의 많은 사실들이 규명되지 않았고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았다. 광주항쟁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는 과거 역사이면서도 현재 쟁점이고, 미래 과제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권혁은은 당시에 군()이 어떠한 생각과 작전 전략으로 진압을 했는지 추적하여 폭력의 기원을 보여준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인식과 기술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이다. 이정선은 광주의 도시 빈민이 항쟁에 왜, 어떻게 참여했고 그 후 어디로 갔는지, 이들에 대한 시민과 정부의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분석하였다. 이들의 무장 시위가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여 중요하다. 김대현은 1978~80년대의 형벌이 아닌 통치 기술로써 보안처분제도가 법제화하고 실행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사회를 보호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기조는 장기적이었고 정부와 사회에 걸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점에서 계속 연구가 필요하다.

 

저작비평회에는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가 초대되었다. 이 주제로 오랜 시간 연구를 하신 이영호 선생과 종교운동의 각 분야를 가장 활발하게 연구하는 분들이 토론을 맡아서 무척 심도 있고 유익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홍동현(동학농민전쟁)은 민족운동사적 서사와 남북접을 구분하는 틀 속에서 민중의 실제 삶이 결락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김정인(천도교)은 각 종교의 신()관과 천도교의 교단 정비, 서북지방의 역할을 부연하며 논의를 풍부하게 했다. 장규식(기독교)은 동학과 기독교가 민중종교이고 천도교와 기독교는 메시아니즘의 공통점이 있다고 보며 신종교 운동을 민중종교 운동사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영호 선생은 저작비평회의 의미를 각별하게 평가하며 선후배 연구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더 많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편집위는 유의미한 저작비평회를 기획하여 연구자의 소통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책을 깊이 읽어내고 음미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김진환의 서평은 김선호의 『조선인민군-북한 무력의 형성과 유일체제의 기원』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이 인민민주주의혁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저자가 새롭게 발굴한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이 인민의 군대였는지는 해석에 이견을 제기하였다. ()을 통해 북한 체제의 형성 과정을 꼼꼼히 다룬 저작은 북한사 연구에서 뜻깊은 성과이고, 평자의 지적처럼 전쟁 후의 변화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번 호에는 큰 관심을 받을 만한 집담회도 수록하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새롭게 출범하는 시점에서 위원회의 전망과 과제를 논의한 자리였다. 전쟁이 초래한 사회 변화를 연구한 권헌익(인류학자), 한국전쟁 학살과 포로를 연구한 윤성준(역사학자), 형제복지원 등 시설 문제에 천착한 주윤정(사회학자)1기 위원회에서 주로 대구경북 지역을 조사한 김상숙, ‘수복후 학살을 조사한 신기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한 임채도로 패널이 구성되었다. 집담회에서는 2기 위원회가 현 정부 출범 4년이 지나 이제야 발족한 배경, 위원회 활동에서 예상되는 어려운 점들, 조사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문제나 보고서 형식 등 위원회가 참고할 만한 구체적인 제안들까지 논의되었다. 다시, 어렵게 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게 된 만큼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위원회의 철저한 조사 및 진실 규명이 절실함을 공유하였다.

 

45호는 일반논문을 9편이나 실을 수 있었다. 연구 대상 시기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고르게 분포하는데, 그중 교육사 논문이 세 편에 달한다. 김일환은 1920~30년대 보성전문학교를 다루며 식민지기 조선인의 전문학교 설립과 운영을 공공성 측면에서 면밀하게 분석하였다. 윤민혁은 보통학교 졸업생 지도정책을 활용한 조선총독부의 지방 자치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김상훈은 한국전쟁기 서울 중등 훈육소의 설치와 운영, 교육열과 학생 활동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전시 교육의 실상은 보다 풍부한 연구가 기대되는 주제이다.

 

식민지 시기 연구로 김영진은 1920년대 새로운 맑스주의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조선에 수용되는 방식과 논쟁을 정리하여 조선 사회주의자들이 정통으로 삼은 사상 계보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최은진은 1930년대 소작쟁의를 해결하고자 조선소작조정령이 제정되었으나 법령의 결함이나 미준수로 소작쟁의가 계속 빈발했다고 분석하였다.

 

현대사 연구에서는 강성호가 1952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한국기독교연합회가 이승만 지지운동을 주도했고, 기호파와 월남 개신교 세력의 대립이 오랜 갈등의 연장이라고 지적하였다. 박아름은 사회주의 국제분업 체계의 특징과 북한이 가입을 거부한 배경 및 영향을 국내외 정치 상황 속에서 분석하였다. 이정은은 전태일의 태일피복구상이 근로기준법을 넘어 노사 간의 관계 형성을 새롭게 모색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신재준은 1970년에도 공해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고 정부의 대응, 환경권 등 사회 인식의 형성이 있었다고 보았다.

 

전태일의 간절한 외침은 51년을 지나고 있지만, 평택항에서 청년 노동자 이선호는 컨테이너에 깔려 목숨을 잃었고, 노동 현장은 이 순간도 위험천만하다. 이상의 논의와 연구가 독자들에게 명민한 지적 자극과 날카로운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동시에 미래를 살아갈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 그리고 우리의 학술 활동이 어떠한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지 더 깊은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다. (김아람)

 

 

 

■ 특집 - 518 폭력의 기원과 통치

 

권혁은 / 518 항쟁기 시위 진압의 기원 - 충정훈련, 특전사, 그리고 대반란(counterinsurgency) 전략

 

이정선 / 1980년 광주항쟁과 도시 빈민 -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김대현 / 치안유지를 넘어선 치료복지의 시대 - 1970~80년대 보안처분제도의 운영실태를 중심으로

 

 

 

■ 저작비평회

 

동학농민전쟁부터 31운동까지, 종교계의 활동으로 본 사회사상 변화의 대서사

 

이영호,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푸른역사, 2020)

 

사회 : 김헌주

 

논평 : 김정인, 장규식, 홍동현

 

 

 

■ 연구논문

 

김영진 /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수용된 변증법적 유물론의 계보와 맑스주의 철학의 정전화(正典化)

 

김일환 / 1920~30년대 보성전문학교의 운영과 공공성 문제

 

윤민혁 / 1930년대 전반 식민지 지방자치와 보통학교졸업생 지도정책

 

최은진 / 1930년대 조선소작조정령의 제정과 시행의 한계

 

김상훈 / 한국전쟁기 서울에 개설된 중등 훈육소

 

강성호 / 1950년대 한국 개신교 선거운동의 주도세력에 대한 연구 - 195285정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박아름 / 1962년 북한의 사회주의 국제분업이탈 분석

 

이정은 / 전태일의 태일피복구상과 1960~70년대 평화시장 봉제업계

 

신재준 / 1970년 전후 공해(公害)의 일상화와 환경권 인식의 씨앗

 

 

 

■ 서평

 

김진환 / 조선인민군과 북한사회 연구 진전의 옹골진 씨앗

 

김선호, 『조선인민군-북한 무력의 형성과 유일체제의 기원』(한양대학교 출판부, 2020)

 

 

 

■ 집담회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과 과거사 정리의 쟁점들

 

사회 : 김아람

 

패널 : 권헌익, 김상숙, 신기철, 임채도, 윤성준, 주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