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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42호 (2019년 하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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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2-05 조회수 : 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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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전 세계가 시위의 열기로 뜨겁다. 6월 홍콩에서 시작된 범죄인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대표적이다. 한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다시 홍콩에서 돈을 훔친 사건에 대해, 홍콩에서는 홍콩에서 일어난 절도만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언뜻 보면 범죄인을 대만에 인도해 살인죄도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송환법의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00만 홍콩 시민이 그에 반대해 거리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있었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150년 동안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고,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 행정부, 법원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행정장관을 간접 선출하게 하는 등 홍콩의 입법·행정에 간여했고,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하고도 후보자는 중국에서 추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맞서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시위가 2014년의 우산혁명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중국 정부가 정치범을 제거하는 데 송환법을 악용할 것을 우려하며 반대 시위에 나섰고, 송환법이 철회된 뒤에도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홍콩 민주화시위에 한국 5·18단체 등 국내외에서 지지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위를 정치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자본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손잡았고, 부동산 개발업자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이 싼값에 방매한 토지를 사들여 호화 아파트를 지었다. 그 결과 홍콩의 빈부 격차, 주택 문제, 부동산 투기 문제가 심각해진 데다가 청년 실업까지 겹쳤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홍콩에서는 송환법이라는 촉매제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50, 레바논에서는 메신저 앱에 부과된 세금 20센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물파이프 담배값, 인도에서는 양파값이 촉매제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청년층에게, 고매한 정치보다도 일상의 폭력과 그를 외면하는 기득권의 위선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한국에서도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검찰개혁이라는 민주적 요구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구 386세대와 불공정한 입시 제도를 목격하면서 계급적 박탈감을 절감한 20~30대 사이에 현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일상이 정치가 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재점검할 때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필연적이게도 『역사문제연구』 42호의 특집에는 ‘1980년 사북사건-배경, 주체, 지역이라는 주제 아래 사북사건이라는 시위를 새롭게 해석하는 논문들이 수록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사북팀이 2016년부터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동연구해온 결과물이다. 김아람은 「1960~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에서 정부의 석탄 증산정책에 기대어 동원탄좌가 불법행위를 자행하며 성장한 것이 사북사건의 구조적 배경이었음을 밝혔다. 김아람의 연구가 사북사건의 원인에 대한 정통 역사학적 접근인 데 비해, 문민기는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에서 사북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탄광에서 함께 일하던 전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본 광부들의 감정에 주목했다. 장용경은 「1980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에서 광부들의 노조지부장 부인 린치 사건을 국가 폭력에 대한 항쟁의 일환으로 쉽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장미현은 「사북사건의 여성들」에서 여성의 사북사건 참여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활동이 드러나지 못했던 사회적 맥락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세림은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이 지역에 약속한 후생복지가 국가 폭력 및 기업의 일상적 감시와 결합하면서 결국 사북사건 참여자들을 소외시키고 지역공동체를 와해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 특집논문들은 사북사건을 독재국가 또는 악독기업에 맞선 항쟁으로 제한시키기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각 논문과 논문들 앞에 위치한 사북팀의 취지 설명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저작비평회와 집담회에서도 다양한 주체와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저작비평회에서는 이정희의 『한반도 화교사』를 통해, 1880년대부터 한반도에 살아왔지만 한국인의 뇌리에서 잊혀진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남아시아 화교와 다른 한반도 화교만의 특수성, 한반도 화교 내부의 출신 지역 및 계층에 따른 격차, 한반도 화교와 한국인의 관계를 억압 또는 피억압의 관계로 보려는 공식을 넘을 수 있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집담회에서는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집담회는 당장 논문으로 발표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당대의 이슈를 다루는 코너였는데, 당초 서평으로 장애사를 다루려던 기획이 집담회로 커지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장애사가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비가시화된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장애 또는 장애인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혀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갖는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주의적 인식 틀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하고 중층적인 정체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역사인식,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상례화된 가을 태풍과 일상의 무게에도 마다하지 않고 두 기획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역사문제연구』 42호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연구논문이 투고되었다. 그리고 마치 근대사의 비중이 적은 것을 아쉬워한 지난 호의 책머리에에 호응하기라도 한듯이, 근대사 논문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권기하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 관념의 역할」과 이기훈의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는 전통적인 관념과 시위 수단이 근대적 운동의 매개가 되어 공존하는 양상을 그렸다. 윤현상은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에 주목한 반면, 장원아는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에서 근우회를 일본인에 대항한 민족통일전선으로만 이해하는 민족주의적 서술을 비판하고 여성해방을 위한 통일전선이었음에 주목한다. 식민권력과 토건업계의 통제 및 타협 관계를 다룬 고태우의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와 함께, 이들 연구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 길항하는 역동적인 역사상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예진이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에서 배우를 고용불안정 상태에 놓인 생활자로 접근하고, 임유경이 「메이퀸과 페미니즘」에서 메이퀸을 통해 한국의 여대생 표상과 여성 담론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 것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연구논문들 덕분에 모처럼 역사문제연구42호에서는 근대사와 현대사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었고, 동시에 일정한 문제의식이 전체를 관통하면서 『역사문제연구』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여기 수록된 다양한 코너와 논문들이 독자들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목차

 

특집: 1980년 사북사건 배경, 주체, 지역

김아람, 「1960~19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

문민기,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

장용경, 「1980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

장미현, 「사북사건의 여성들 사라진 억센 여자들과 말하는 여성들」

김세림,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 - ‘복지라는 외피를 쓴 일상적 감시」

 

저작비평회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정희,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2018.

사회: 김헌주

논평: 김종호, 박준형, 임광순

 

연구논문

 

권기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와 관념의 역할」

이기훈,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 판결문 자료를 중심으로」

윤현상,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

장원아,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

고태우,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

차예진,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

임유경, 「메이퀸과 페미니즘 1960~1970년대 한국의 대학문화와 여성 담론의 변천」

 

집담회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

사회: 이정선

참석: 문민기, 박은영, 소현숙, 이순영, 하금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