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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여름영화상영회 3탄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공동체 상영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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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8-14 조회수 :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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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공동체 상영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74 8 30, 도쿄 중심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 현관 로비에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한 달 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름으로 성명서가 발표되면서 범인들이 밝혀졌다.

이들은 미쓰미시 등 일제의 침략기업과 일본의 전쟁책임을 촉구했으나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이미 다 끝났다고 이들의 주장을 외면했다. 1975 5, 이들은 일제히 체포되었다.

'늑대'부대원 2명은 사형이 확정되었고, 2명은 일본 적군의 비행기납치투쟁으로 석방되어 아랍으로 갔다. 지금도 사형수로, 무기징역수로, 국제수배자로 감옥에 있거나 감옥 밖으로 나왔거나 일본에서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으로만 말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사회에서 배제되고 철저히 잊혀졌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서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던 한국의 김미례 감독이 이들의 흔적을 쫓아 일본으로 갔다. 왜 일까?

“과거 36년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인인 나는 ‘반일’정서 속에서 성장했다. 나에게 ‘반일’투쟁과 저항은 옳고 영웅적인 행위였지만, 일본인에 의한 ‘반일’투쟁은 반역의 행위인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서 일제침략기업을 폭파시키고, 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일본인들. 일본사회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주제의 엄중함이 나를 짓누르고, 도덕적인 질문들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끌려서 계속 그들을 만나러 갔다.

40여년 동안 사형수로, 무기징역수로 감옥에 있거나, 지명수배자로 살아가는 그들은, 일본사회로 부터 평생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는 그들처럼 용서받지 못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뒤를 나는 바라본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참여하였거나 지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른바 일본의 전후세대이다. 그리고 대부분 하층노동자이거나 일본 내의 소수자들이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재일조선인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고, 한국의 진보단체와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여름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조치로 한일관계가 다시 뜨겁다. 반성과 책임이 한-일간의 뜨거운 역사적 쟁점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의 문제의식과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를 함께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연구소 이메일, 페이스북 댓글달기를 통해 신청 후 참가비를 아래 계좌로 입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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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9 8 29() 오후 7

 

□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제기동역 1번 출구 방향 3)

 

□ 주관 : 역사문제연구소

 

□ 관람료 : 1만원(캔맥주 1캔 서비스), (입금계좌 : 신한 100-012-850436, 예금주 : () 역사문제연구소)

 

영화관람 후 감독과 패널들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 진행 :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 패널 : 김미례(감독), 신지영(연세대), 오제연(성균관대),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 김미례 감독 주요 작품 : 『노동자다 아니다』 (2003), 『노가다』 (2005), 『외박』 (2009), 『산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