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이야기들

[연속기획 혁명] 집담회 - 러시아혁명을 1980년대에 묻다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7-11-09 조회수 : 10,355

본문

d4b5dbe4e9534935298a877a9bc402bc_1510215928_3095.jpg
 

 

러시아혁명을 1980년대에 묻다

- 1980년대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집담회는 1980년대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을 묻는다.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는 뜨거웠던 시절로 기억되지만 2017년 현재의 관점에서 뜨거웠던 시절의 급진적 부분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그 이유를 87년 항쟁의 한계로 보든, 1990년대 초반 동구권 붕괴의 결과로 보든, 한국사회의 변화로 보든 ‘혁명’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1980년대를 상징하는 광주항쟁은 실제로 혁명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1980년대의 혁명운동과 혁명사 수용방식, 그리고 현재의 평가를 함께 나눠본다.

 

 

일시 : 2017 11 25() 14:00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제기동역 1번 출구, 도보 3)

 

발제 : 이진경(수유너머 104), 최민(다음시대연구소)

서면발제 : 황광우(작가)

사회 :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패널소개

 

최민(발제)

1980년대 남한 자생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가이자 이론가. 70년대 말부터 급진적 민주화운동 내부의 노선투쟁에 참여하여,

서울의 봄 회군을 둘러싼 "주전파-주화파" 논쟁, "무림-학림" 논쟁, "CNP" 논쟁 등을 가장 비타협적인 입장에서 이끌었으며, 제헌의회 그룹의 '총책'으로 활동했다.

장애인운동으로 눈을 돌려 장애인 노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으며, 사회적 기업과 같은 현실의 요구를 받아안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진경(발제)

1987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1980년대 남한 학생운동이 배출한 이론가로서 이른바 "PD"계열 비합법 조직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통적 좌파 이론을 지양해 포스트 이데올로기를 소개했고,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노마디즘>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수유너머104에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황광우(서면발제)

대학 제적 후 야학활동을 거쳐 노동자의 길을 걸으며, "광주 너머"를 모색했다. 80년대 초반부터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등의 대중교양서적을 펴냈고,

훗날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될 진보정당운동에 이론적-조직적 기반을 제공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의 핵심 이론가로서 활동했다.

현재 광주 고전연구원에서 교사, 주부, 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있으며, <철학 콘서트> 외 많은 저서를 펴냈다.

 

전원배 (사회)

1987년 여름 출소 후 노동자대투쟁의 소식을 접하고, 주저 없이 짐을 꾸려 단신으로 창원으로 갔다.

마창노련을 외곽에서 도왔으며, 이후 20년 동안 울산에서 노동자의 동지로서, 벗으로서 살았다. 3년 전부터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역문연의 연속기획 '혁명'의 대미를 장식할 집담회의 밑그림을 그린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의 쓸쓸한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세 분의 발제자들로만 대표될 수 없는 1980년대 비합법 조직운동의 다양한 고민을 되새기며 사회를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