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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박물관 <제2기 인문문화학교> 수강생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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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1-11 조회수 : 13,781

본문

▶주제
⊙ 개인의 이해-최한기/장지연/최남선/최승희/박태원/유진오/안재홍/박경

⊙ 제도와 조직의 이해-학문/성문법
⊙ 관념의 이해-인문지리/주체

▶강좌주제 구성취지

이 강좌는 우리 근현대사 속 일상의 지식과 상식, 학문관, 자아관, 법관념이 지닌 문제지점들을 볼 수 있고자 마련했습니다. 우리 근현대 문화 형성과 이를 위한 글쓰기의 주축이 됐던 지식인과 문화인들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 근현대 문화사 형성의 구체적 과정과 의지, 그리고 이에 관련되는 동아시아의 전통과 근현대, 그리고 당대 세계사의 움직임이라는 전체적 틀에서 우리를 보고, 우리라는 부분에서 다시 그 특이점이 있다면 그 특이점을 볼 수 있도록  ‘우리’라는 사건의 본질의 현상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구성됐습니다.
강좌는 개인의 이해에서 다룬 내용들이 제도와 조직의 이해와 관념의 이해에서 연결되어 파악되어, 우리 근현대 학문과 예술의 형성에서 동시대 동아시아 경향과 세계사적 현상이 어떻게 맞물리고, 사회와 정치조직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우리 민족문화와 외래문화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나고 ‘우리’를 형성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번에는 우리 교과서에 자주 오르내리던가 교과서 서술의 주체였던 인물들의 사상과 그들이 우리 근현대문화에 남긴 영향들을 소문으로만 혹은 좌우이념 정치의 대립 속에서만 조명되던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재와 과거의 일상체계와 지식과 문화 형성에 뿌리깊이 잔존돼있는, 사실 우리들의 정체이기도 한 어떤 생활관과 가치관을 오늘날 직접적으로 읽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고 보고 인문학박물관 강좌에서는 실상 우리 근현대문화의 주축이 됐던 이런 문화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로 근대학문과 교육, 자아와 문화의 형성, 법과 정치조직 등의 형성에 직접 관여하며 글쓰기와 창작활동을 해왔던 이들이 해당 분야에서 전파한 관념들과 창작물등을 근대적 글쓰기의 의미등을 분석하되, 분과학문별로 다루어지던 이런 문화적 성취들에 대해 당대의 시대정신이라는 통합적 중심에 비추어 볼 때의 실제와 오늘날의 문화적, 이념적 전망에서 볼때의 전체 면모를 함께 볼 수 있도록 강의방향을 잡는 것이 기획의 주 의도입니다. 김정호의 작업도 이런 선상의 시작에서 볼 수 있고자 했습니다.    
                
⊙ 주제 인물의 경우
`각 인물이 처한 시대개관
`각 인물의 인맥(친인척등 가족, 친구, 선후배 관계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주변 이런 인맥들의 주요 동향과 전망등 우리 문화사, 사회사, 정치사에 이들이 차지하는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비전의 형성과 영향관계를 드러낸다 - 이들 주변인들이 각 인물에 대해 한 평가, 인터뷰 등도 함께 강독 )
`각 인물이 받은 역사적, 문화적 영향을 받은 동시대 중국, 일본, 서구문화와 사상을 볼 수 있는 텍스트들도 함께 강독    
`각 인물이 남긴 글과 기타 자료 등을 주 텍스트로 강독, 더불어 이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개념에 관련되는 우리 전통 철학,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철학, 서구 철학과 담론 텍스트도 비교, 강독한다.  
`각 인물에 대한 평전도 함께 강독, 그리고 각 인물이 우리 문화사 혹은 역사에 남긴 영향과 평가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소개.
`참고문헌 소개와 해제, 대략 한 페이지 정도의 교안 준비

⊙ 개념의 경우
`주체 - 식민지 근대 주체 개념, 취미 개념과 서사(記,話,談)의 형성, 그리고 이러한 근대열(近代熱)에 대해 관련 텍스트 강독하면서 동시에 이에 연관된 중국과 일본, 서구 근대의 문제 비교 설명.            

`인문지리 - 김정호의 지도와 지리지를 중심으로 전통 글쓰기의 유형과 의사소통방식을 본다. 덧붙여 동서양 지도를 비교, 서구 인문지리학의 역사와 근현대 우리 인문지리학의 역사를 보며 중국, 일본 근대 인문지리와도 비교 강독    

`학문(대학, 학회, 학자 개념 포함) -  경성제국대학 학문체계를 분석하면서 우리 전통학문 개념과 역사, 근대 중국과 일본 학문 형성과 우리가 이것을  수용한 과정, 그리고 서구 학문 역사를  포괄적으로 소개.

`성문법- 전통 성문법 개념과 역사, 근대 중국과 일본의 서구 법과 법학 수용과정, 그리고 우리 근대 법 형성 과정을 서구 법 역사 관련 텍스트등과 함께 포괄 강독. 기본은 서구 성문법 성립사 텍스트를 축으로 하되 목표는 우리 성문법의 역사이며, 근대 동아시아와 비교 강독.  

⊙ 이에 덧붙여 개념의 경우 이하의 내용을 보충  
`각 개념 관련 제도나 조직, 역사 등이 인간에게 필요하게 된 배경 혹은 원인 관련 동,서양의 철학적, 이론적 텍스트 강독
`각 개념들의 동,서양의 이상적 모범 사례와 문화사적 중요 사례 소개 및 관련 텍스트 강독  
`각 개념의 문화적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기능에 대한 비판과 평가의 역사 관련 텍스트 강독
`참고문헌 소개와 해제, 대략 한 페이지 정도의 교안 준비

구체적 강의 텍스트와 강의구성방향은 위의 제시에 준해 강사 분들이 정하게 될 것입니다  

▶강의일정은 강사 일정에 따릅니다.

* 최한기-이현구(1월 23일)
* 최남선-전성곤(1월 30일)
* 장지연-노관범(2월 6일)
* 유진오-황병주(2월 20일)
* 최승희-성기숙(2월 27일)
* 박태원-전현숙(3월 6일)
* 안재홍-정윤재(3월 13일)
* 박경리-이승윤(3월 20일)
* 학문-김재현(3월 27일)
* 성문법-김수용(4월 3일)
* 주체-이경돈(4월 10일)
* 인문지리-양보경(4월 17일)

▶강의 주제 보충설명

1.최한기[崔漢綺, 1803~1877]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사상가. 자는 운노(芸老), 호는 혜강(惠崗)·패동(浿東)·명남루(明南樓). 1825년(순조 25) 사마시(司馬試) 급제 후 학문에 전념하다가 1872년(고종 9)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를 지냄.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확립하여 근대적 합리주의와 개화사상을 싹트게 함. 동서 과학 분야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서양의 발전된 사상, 과학을 조선의 구조에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생각으로 일관된 저술. 저술로는《기측체의(氣測體義)》등이 있음.
조선의 쇄국은 침체된 무발전의 원인이 됨을 지적. 개국통상의 필요성을 용기있게 논하기도 함.기독교 사상의 침입도 객과 주인의 자리를 현명하게 지키면 오히려 덕이 된다는 주장을 펼침.


2.최남선[崔南善, 1890.4.26~1957.10.10]
와세다[早稻田]대학 지리역사학과에 입학. 1907년 모의국회 사건으로 퇴학, 이듬해 귀국하여 자택에 신문관(新文館)을 설립. 다음해 잡지 《소년》를 창간하여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일인. 1909년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학우회 설립위원. 1910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창설하여 고전을 간행하고 20여 종의 육전소설(六錢小說)을 발간. 1913년 다시 《아이들 보이》를 창간했으나 이듬해 폐간되자 다시 《청춘(靑春)》을 발간하여 초창기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 하나였지만, 이어 친일 활동이 있음. 경력으로는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촉탁, 서울시사 편찬위원회 고문 ,친일 반민족 행위로 기소, 병보석 석방 ,도쿄 재일조선인 유학생 학병지원 권고 강연 ,건국대학 교수 재직한 바가 있음.

3.장지연 [張志淵, 1864.11.30~1921.10.21]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초기의 언론인.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발표하여 일본의 흉계를 통박하고 그 사실을 널리 알림. 하지만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구실을 한 <매일신보>에 고정 필진으로 참여해 친일(親日) 경향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순응하여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

4.박태원(朴泰遠, 1909.1.6~1986.7.10)
아호는 구보(丘甫), 구보(仇甫), 구보(九甫). 박태원(泊太苑)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함.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조선문단》에 시 〈누님〉을 발표하며 등단.귀국후 1931년 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 1933년 이태준, 정지용, 이재범, 이상, 김유영, 김기림 등과 함께 순문학적, 유미주의적 성향의 구인회를 결성. 광복 후인 1946년 좌익 계열의 문학인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는 등 잠시 남로당 계열의 문예 운동에 참여, 1948년 보도연맹에 가입하며 전향.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에 온 이태준, 안회남, 오장환, 정인택, 이용악 등을 따라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정황은 분명치 않음. 이해 7월경 조용만에게 목격된 것이 남쪽에서 박태원을 보았다는 마지막 증언임.

5.유진오 [兪鎭午, 1906.5.13~1987.8.30]
법학자, 문인 겸 정치가. 호 현민(玄民). 서울 출생. 1929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예과 강사를 거쳐 보성(普成)전문학교 법학교수가 됨. 1927년경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 《조선지광(朝鮮之光)》 《현대평론》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 1948년 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헌법을 기초하고,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면서 1951년 한일회담 대표로도 활약. 1952년 학계로 돌아가 고려대학 대학원장을 거쳐 총장에 취임하였는데, 1953년 국제법학회 회장에 피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이 됨. 5·16군사정변 후에는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장 ·유엔 한국협회장이 되었으며, 1964년 대한교육연합회장 등을 역임하고, 1965년 법전편찬위원에 선출. 1967년 신민당(新民黨) 총재가 되어 그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 1970년 신민당 고문에 취임. 1974년 고려중앙학원 이사에 취임하고, 1980년 통일원 고문 ·국정자문위원에 위촉. 학술원 공로상 및 문화훈장을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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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안재홍[安在鴻, 1891.12.30~1965.3.1]
경기도 평택 출생.호는 민세(民世). 한국의 독립 운동가, 정치가이며 언론인, 역사가로 일제치하에는 신간회활동 주역. 해방정국에서 한성일보사 사장직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으며, 우사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좌우합작 활동 등을 추진. 1947년 2월 5일 미군정청의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어 1948년 8월 15일까지 근무했으며, 남북협상에 참가했었기도했고, 남북협상 실패 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나 6월 25일,한국전쟁때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납북.

7.박경리[朴景利, 1926.10.28~2008.5.5]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등단.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음

8. 최승희[崔承喜, 1911.11.24~1969.8.8]
1926년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발표회를 구경한 것을 계기로 그의 연구생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감. 1927년과 1928년 연이어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경성공연에 출연하여 유명해졌으며, 1929년 이시이와 결별하고 서울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차림. 1930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비롯해 4회의 신작발표회를 가졌으며, 그후 한성준(韓成俊)에게 고전무용을 배움으로써 창작무용의 뿌리를 조선춤에 두는 계기가 됨. 1931년 문학운동가 안막(安漠)과 결혼, 1933년 이시이와 합류하여 1934년 일본청년회관에서 신작발표회를 열어 승무·칼춤·부채춤·가면춤 등 고전무용을 현대화하는 데 성공.1936년 영화 《반도(半島)의 무희》에 출연, 4년 장기상영이라는 흥행기록을 남김. 1937년 구미 각국에서 순회공연을 하여 '동양의 무희'라는 찬사를 받았고, 1940년 미국을 비롯한 남아메리카대륙까지 진출함. 1942년 '전선위문공연'을 떠나 조선·만주·중국에서 130여 회에 달하는 공연을 가졌으며, 1944년 도쿄[東京]로 돌아와 24회의 연속 독무공연을 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장기독무기록을 보유. 광복 후 위문공연을 하였다는 이유로 친일 무용가라는 비판을 받음.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1946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 조선춤을 체계화하고 무용극 창작. 전쟁 중인 1950년 말에는 베이징[北京] 중앙희극원에서 무용반을 설립하여 학생들을 지도. 1955년 인민배우가 되었으나, 1958년 안막이 숙청당하자 연구소도 국립무용연구소로 명칭이 바뀜. 그후 《조선민족무용 기본》 《조선아동무용극 기본》 등의 저서를 냈으며, 1967년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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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장소-인문학박물관 세미나실
▶강의시간 - 토요일 오후 2-5시(중간에 20분 휴식, 전체 수업은 강독과 질문, 토론 형식, 필요한 경우 관련 영상, 음향자료 준비 )
▶수강대상  - 일반인
▶수강료 - 회당 1만원
▶강사료- 12만원(매 월말)

문의 ; 학예실장 강성원(747-9130)
연구원 김진희, 임승희(747-9131, 9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