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활동
  • 민중사반
  •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은 2005년 가을에 결성되었습니다. 애초에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한일민중사 연구 교류를 담당할 단위로서 조직되었는데, 차차 독자적인 반으로 성장하여 이제 한일 교류가 민중사반의 하나의 사업이 될 만큼 성장하였고, 반 산하에도 작은 연구팀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습니다.

    30여명에 이르는 민중사반원들의 대부분이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이지만, 미술사, 한국문학, 교육학 전공자들도 여기서 활동하고 있고, 반원들의 국적도 한국, 일본, 캐나다, 독일 등으로 다양합니다. 다양한 사람과 주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민중’이라는 회로를 거쳐서 다시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반에서는 2013년, 그 간 연구성과를 묶어 『민중사를 다시 말한다』(역사비평사)를 출간하였고, 한일민중사연구 교류의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은 2015년 일본에서 『日韓民衆史研究の最前線 -新しい民衆史を求めて』(有志舍)로, 2017년 한국에서 『민중경험과 마이너리티』(경인문화사)로 간행하였습니다.

  • 1950·60년대 연구반
  • 역사문제연구소 1950·60년대 연구반은 60년대 전후, 50년대와 60년대 사이의 변화와 지속에 초점을 맞춰 공동 연구하는 반입니다. 기존에 있던 1950년대 연구반의 발전적 해소의 결과로 만들어진 반으로 2020년 9월 3일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50년대, 60년대처럼 10년 단위로 연구되는 경향 속에서 놓쳐진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50년대반’ 50년대를 공부하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60년대를 함께 볼 때 다르게 파악되는 50년대, 50년대의 맥락 없이는 지나치기 쉬운 60년대를 연속적으로 또 단절적으로 봐야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새로이 반을 만들었습니다. 1955-1965년을 연구시기로 삼고 있으나 상한과 하한에 큰 제한을 두진 않습니다.

    사회, 보건에서부터 경제, 정치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심 있는 반원들이 모여 있는 만큼 특정 자료를 함께 보는 방식의 세미나는 지양합니다. 대신 각자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자료를 소개하거나 글을 발표하는 방향으로 세미나를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2022년 50,60년대 변화와 지속을 주제로 한 워크숍 개최를 목표합니다. 현재 13명의 반원이 활동 중이며,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박사과정 이상)

  • 1960·70년대 연구반
  • 1960·70년대 연구반은 한국사, 한국문학, 과학사 등의 전공자들이 모여 1960~70년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을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우리 반은 연구소 정기 심포지엄 <평등과 불평등의 역설, 유신체제를 묻는다>(2012.10.13)를 준비하고자 2011년 결성한 유신체제 연구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1960년대로 연구 대상을 확대하였으며, 개별 연구자가 관심갖는 주제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엮어 발표하는 형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5년부터는 ‘자본주의 한국 사회 형성’이라는 주제 하에 1년에 두 차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한독비교사포룸
  •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의 진정한 해결방안은 한반도만의 관점이 아니라 분단 독일을 비교연구하고, 동아시아와 유럽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그 해결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독비교사포룸은 한국과 독일의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2004년 역사문제연구소와 독일 포츠담 현대사연구센터의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사와 독일사의 비교 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매월 월례발표회를 개최하며, 지속적으로 한국과 독일 연구자들의 학술교류모임을 가졌습니다.

    독일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검토하며 분단의 역사인식과 사유를 넘어서는 여러 가지 노력들, 한국과 독일의 반공교육과 통일교육의 문제, 한국과 독일의 여러 가지 형태의 냉전문화, 트랜스내셔널 역사적 시각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전망을 모색하려 합니다.

  • 교육사 연구반
  • 역사문제연구소 교육사연구반은 2018년 4월에 결성되었습니다. 이후 매달 1회의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새로운 교육사 연구서 및 자료를 읽거나, 연구 주제를 발표하고 토의하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9년 8월부터는 역사문제연구소 소속 정식 연구반으로 등록되어 활동 중입니다.

    교육사연구반에서는 좁은 의미의 근현대 한국 교육사 전공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교육사를 주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제시기를 시작으로 하였으나, 최근에는 개항기, 현대사 등 근현대사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약 10여 명의 연구자가 연구반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교육사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 상호간의 연구 교류 및 문제의식의 공유, 확장을 통하여 연구반원 개개인의 학문적 성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교육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합니다.

  • 식민지기 연구반
  • 식민지기 연구반은 일제 식민지 시기 역사 전공자들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2019년도 정기심포지움을 준비한 '만세후 세미나'에서 비롯하여, 2020년 봄 연구반으로 정비하여 출범했습니다.

    '식민지' 혹은 '근대'라는 시기의 여러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다양한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모였습니다. 식민지기의 역사와 현재와의 접점이라는 감각을 찾으며, 기존 연구의 축적에서 더욱 나아간 전망을 모색하려 합니다. 현재는 '전시체제기' 나아가 '해방전후'를 시야에 두고 자료 강독 및 발표의 형태로 매월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연구반 소개 / 김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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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7-30 조회수 : 2,46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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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7월 2일. 4.19이후 복간된 서울신문이 그간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다는 취지를 밝힌 복간사이다. 서울신문사는 4.19 와중에 방화되었었다.

 

 

반공독재체제, 두 차례의 개헌, 전쟁과 잿더미, 부흥과 재건, 한미동맹, 한미갈등, 기지촌과 자유부인, 삼백산업, 하녀와 오발탄, 자유당, 민주당, 진보당, 혁신계와 무소속, 선거,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개발, 기술, 제3세계, 태풍 사라, 농협, 원조 분유와 배탈

 

안녕하세요. 이 모든 것을 얘기하는 연구반, 역사문제연구소 50년대 연구반을 소개합니다.

 

저는 2015년 여름, 50년대를 함께 공부할 연구자, 공간이 없나 두리번거리다 먹잇감들을 발견했습니다. 혹은 먹잇감을 노리던 연구자들에게 제가 포획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첫 모임은 각자의 관심사를 얘기했습니다. 서두에 늘어놓은 단어들을 좀 더 추상화 시킨 정치, 경제, 군사, 한미관계, 사상, 통제, 전유, 경유, 근대화가 그것이었죠. 거친 언어여도 좋았습니다. 6070년대와 비교할 때, 연구자가 점점 적어지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추정되는 50년대 연구자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 들떴으니까요. 연구반의 세미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처음엔 연구사를 검토했습니다. 3번 만에 끝났던가요? 역시 역사연구자라면 자료를 봐야되지 않겠습니까. 

 

그 자료가 연구반의 늪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잡지, 정부 간행물, 의회 회의록, 신문. 많고 많은 자료 중에 모든 참가자들의 서로 다른 연구영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뭘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금까지 50년대 연구에서 활용되지 않았던 자료는 뭘까. 그 때의 우리는 '아무도 못 본 자료! 우리가 처음 볼 거야' 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울신문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서울신문의 전신은 대한매일신보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뀌었지만 前史를 꼭 빼닮은 서울신문은 50년대 정부여당의 시각을 옹호·답습·강조하는 이승만-자유당 나팔수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50년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타신문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죠. 다만 네X버 라이X러리의 광풍 속에서 디지털활자가 되지 못한 서울신문은 좀처럼 읽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4면 이상 발행되었던 신문을 혼자 읽어나간다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 수많은 알바와 프로젝트, 실적의 압박에 둘러쌓인 우리에겐 도전!!!하기 힘든 일일겁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더 쉽고 즐거운 여행이 되겠죠.

하지만 막상 연 판도라의 상자는 일단 그 소장처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열람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지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서울신문 본사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서울신문을 이미지로 서비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 소박한 50년대반원들은 처음부터 원문 검색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사진 파일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기술적 논의와 결정, 번복, 재결정, 재번복, 슬픔과 원망이 샘솟을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강조☞)역사문제연구소(☜강조)에서 신문 촬영 비용을 일부 지원해준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반원 분의 협조를 얻어 우리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의 서울신문을 몽땅 촬영했습니다. (참고로 이 파일은 〓연구소 회원〓에 한하여, 연구소 내의 지정 컴퓨터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그 이후의 신문은 반원들의 피땀을 모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부터 지금까지 50년대 연구반이 함께한 서울신문은 1954년 1월 1일자부터 1960년 12월 31일자까지입니다. 저희반은 서울신문이 보여주는 50년대를 명확히하기 위해 사설 전재·발췌를 세미나 발제의 기본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각 반원의 관심 영역에 관한 기사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신문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서 보기 힘든 정부여당의 이야기, 경제 및 한미관계에 관한 깊이 있는 기사, 자유부인으로 대표되는 4면에 담긴 수많은 사건사고들, 농촌과 도시의 사람 사는 얘기를 담은 3면까지. 50년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물론 반장인 저의 성정, 반원들의 일심동체 등으로 인해 저희는 신문을 함께 읽기만 했습니다. 7년 어치의 신문을 읽는 동안 많은 반원들이 나가고, 또 새로운 반원들이 들어왔습니다만, 읽은 신문을 가지고 무엇을 해볼지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 ‘서울신문을 통해 본 1950년대’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진행하려 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서울신문과 여타 신문과의 비교, 사건에 대한 서울신문의 논조 변화 추적, 인물-정당에 대한 서울신문의 태도 변화와 같은 소주제들로 꾸려질 발표회는 찬바람이 불기 전 연구소에 열립니다.(정확한 날짜는 미정입니다.) 1950년대 정치, 경제, 군사, 사상, 외교에 관한 별다를 것 없지만 서울신문을 통해 본 새로운 얘기에 관심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